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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예수님의 십자가가 주는 은혜 요19:23-30

작성자
이 주신
작성일
2021-11-15 09:16
조회
551

십자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불가사의의 지혜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서 패배하고 십자가에서 사형을 당하여 죽을 수 있는지 아무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십자가의 진리는 한 번 들었다고 다 깨달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래 믿었다고 다 아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으면 갈증이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더 알고 싶은 갈증입니다. 예수님께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를 만나고 싶은 갈증입니다.

이런 갈증을 앓고 본문을 보면 우리의 관심을 끄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본문 25절에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그 현장에서 바로 예수님 곁에 있던 사람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의 이모 글로바의 아내인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께 가장 사랑을 받았던 제자 요한. 이렇게 다섯 명이 예수의 십자가 곁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골고다 언덕은 십자가 처형을 구경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 호기심 때문에 나온 사람들. 처형당하시는 예수님을 잊지 못해서 나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혀 신음하시면서 서서히 죽어 가시는 예수님 바로 곁에 작은 목소리로도 서로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근거리에 있었던 사람은 이 다섯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 고통당하며 죽어 가는 그 신비스러운 현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구원받았다는 것을 믿는다면 십자가를 좀 더 알고 싶고 가까이 가보고 싶어 하는 안타까움과 갈증이 마음에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예수 그리스도를 더 알고 싶어 하고 그를 항상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주님으로만 늘 생각하고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승리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담고 예수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죄와 죽음을 이기신 것 때문에 흥분합니다.

모든 은혜는 십자가로부터 출발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은 항상 십자가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꼭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한 복음서를 보면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전체 분량의 3/1가량이 예수님의 생애 중 마지막 한 주간인 고난 주간, 십자가, 죽음 등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네 제자가 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생애를 이야기할 때 십자가의 고난을 중심에 두고 다루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울도 복음을 이야기할 때에 십자가의 도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님이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고 그는 소리쳤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는 자기 자신을 고백하기를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거의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바울이 부활을 등한히 했다거나 예수님의 승천을 이야기하지 않았다거나 하는 말이 아닙니다. 다 중요하지만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모르는 부활은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만큼 십자가는 복음의 핵심입니다.

지난 2000년을 돌아보아도 기독교 역사를 통틀어 기독교를 상징하는 것은 십자가 형틀입니다. 기독교 하면 십자가요 예수님 하면 십자가요 이렇게 다 십자가로 통합니다.

초대 교회 때는 십자가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현장을 실제로 목격했던 예수의 제자들이나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이 십자가가 소름 끼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십자가의 형태를 만들어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그 어떤 시도도 일체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대의 사람들이 다 가고 나서 주 후 4세기경 콘스탄틴 대제 때부터 십자가는 기독교를 상징하는 상징물이 되었고 예술의 소재로 활용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의 신앙생활에는 누수 현상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이 고백하는 말을 들으면 이구동성으로 비슷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고 하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알기는 알았지만, 그것이 나하고 아무 상관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믿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님이 나를 위해 돌아가심을 믿습니다. 나는 죄인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은혜는 십자가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관심이 항상 마음에 크게 작용하는 것입니다. 좀 더 알고 싶다. 좀 더 십자가 앞으로 가까이 나갔으면 좋겠다. 좀 더 예수님에 대해서 깊이 알고 그와 좀 더 가까워지고 친해졌으면 좋겠다. 하는 갈증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주는 은혜는 우리 대신 치르신 고통의 대가 지급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통받아야 할 것을 예수님이 대신 감당하신 곳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로마 군병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받았습니다. 십자가의 형은 손과 발에 못을 박아 나무에 매다는 이 형은 가장 잔혹한 고통을 안겨주는 사형제도입니다. 그것은 지옥의 고통 그 자체입니다.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죄인에게는 형벌이 따라옵니다. 형벌은 고통을 수반합니다. 만약 우리의 죄값을 그대로 받는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형벌을 피할 수 없고, 그 형벌에는 무서운 지옥의 고통이 따라옵니다. 그러므로 그 고통을 주님이 대신 짊어져 주신 것입니다.

이사야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실 훗날을 내다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사야 53장 5절)

예수님이 찔렸습니다. 예수님이 상했습니다. 예수님이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내가 받아야 할 징계 때문입니다. 내가 받아야 할 고통입니다. 내가 받아야 할 아픔입니다. 이 모든 것을 예수님이 대신 져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십자가를 사랑해야 합니다. 십자가 앞으로 다가가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주는 은혜는 우리의 수치를 담당한 대가 지급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은 다음에 '군병들이 예수님의 옷을 취하여 네 깃으로 나누었습니다. 복음서를 통해 예수님의 고난 겪으신 발자국을 따라가면 얼마나 참혹한 수치와 모멸과 모욕을 당하셨는가를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그는 매질을 당했습니다. 얼굴엔 사람들이 뱉은 가래침이 묻고, 뺨을 맞고,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나중에는 십자가에 매달렸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죽음입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부끄럽고 처량했는지 모릅니다. 죄는 수치를 수반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죄를 범하자마자 금방 부끄러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나뭇잎을 얽어서 부끄러운 하체를 가리고도 너무나 부끄러워 나중에는 숨어 버렸습니다. 죄는 부끄러움을 가져다줍니다.

만약에 우리가 우리의 죄를 용서받지 못하고 있다면 하나님이 천국 문을 활짝 열어놓고 천사들을 동원해서 아무리 오라고 초청하셔도 우리는 절대 들어갈 수 없습니다.

부끄러워서 못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영광 앞에 우리의 모습 그대로 가지고는 절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만약에 억지로 끌어다가 천국 안에 넣어 놓는다고 해도 부끄러워서 살아남지 못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가 가져다준 수치를 다 제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 수치와 모욕을 다 담당하시므로 우리는 당당하게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도록 다시 세워주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주는 은혜는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다 이루신 현장입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원히 돌아가시느라”(30절) 여기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는 말씀은 구약에 예언한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말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가 구원받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완전히 성취하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무조건 의롭다 하실 수 있는 명분을 다 완전하고 충분하게 주님이 갖추어 주셨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으며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용서받고 당당하게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완전하고 충분한 구원의 길을 우리 주님이 닦아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가 한 번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을 만큼 완벽하게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구원을 다 이루어 주신 현장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린 주님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가까이 가서 조금이라도 함께 있어 보고 싶은 충동을 느껴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신앙인 대부분 사람은 십자가 앞에서 그들의 인생의 전환점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평생 십자가 곁에서 떠나지 않기를 사모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찬송 작가 패니 크로스비가 쓴 496장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십자가로 가까이 나를 이끄시고 거기 흘린 보혈로 정케 하옵소서” 항상 십자가 곁에 머물기를 사모하는 작가의 마음이 거기에 있습니다.

오늘 왜 내가 구원을 받아야 하는지, 내가 왜 죄인이라고 하는지 잘 깨닫지 못하는 분이 계신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펴놓고 십자가의 길을 한 번 따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양발과 양손에 못이 박혀 피 흘리며 신음하고 있는 그 갈보리 언덕으로 한 번 올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조용히 그분의 얼굴을 우러러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내가 왜 구원받아야 할 사람인지 해답을 얻을 것입니다. 내가 왜 죄인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다니지만 예수님을 믿지만, 아직도 죄책감에 끌려다니며 신음하고 있다면 십자가를 향해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그곳에 가면 어떤 죄도 용서하실 수 있도록 우리의 모든 죄짐을 지신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분 앞에는 어떤 죄도 용서받지 못할 죄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죄의 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주는 사랑으로는 우리 마음의 빈 곳을 채울 수가 없습니다. 저 갈보리에 높이 달리신 예수님께 나가면 큰사랑이 있습니다. 세상을 가득히 채우고도 남는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그 사랑 앞에 우리의 무릎을 꿇읍시다. 그 사랑의 강물에 우리를 던집시다. 그 사랑 안에 영원한 기쁨과 만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가장 참혹한 고통을 당하신 분이기에 우리의 고통을 거뜬히 옮겨 줄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분을 만나면 썩은 밀알이 되는 것처럼 자기를 던져 희생하는 그 사람의 힘이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가르쳐 줄 것입니다.

갈보리로 올라갑시다. 예수님이 핏자국을 남기면서 걸어가셨던 그 길을 따라갑시다. 그리고 마지막 숨을 거두시던 그 십자가 옆에 조용히 서서 그분의 피 묻은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을 한번 들어 봅시다. “하나님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옵소서. 저들이 자기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하나이다.” 진정한 평화는 원수를 용서하는 자의 가슴에 옵니다.

우리가 십자가 앞으로 다가가면 하나님의 나라가 그곳에 임하여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나라의 평화, 그 나라의 사랑, 그 나라의 용서, 그 나라의 능력, 그 나라의 사유함, 구원이 바로 그곳에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는 은혜의 샘이 솟아납니다. 모든 하나님의 복음 출발은 십자가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 십자가로 달려갑시다.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가슴에 있는 사랑을 그분에게 드립시다.

저는 여러분이 이와 같은 하나님의 나라의 은혜가 축복이 평생을 통해서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