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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자랑스런 면류관 딤후4:6-8

작성자
이 주신
작성일
2021-12-16 16:04
조회
362

사람이 태어나고 죽을 때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사실은 자주 언급되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세상에 와서 제 손으로 못 입는 옷이 두 벌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하나는 태어날 때 입는 배내옷이고 다른 하나는 죽을 때 입는 수의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수많은 종류의 옷을 입어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입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많은 옷 중에서 인생의 시작과 인생의 끝에 입게 되는 옷 두 벌이 제 마음 가운데 의미 있게 다가온 것입니다.

잘났다고 성공했다고 자랑하지만 결국은 누군가의 손길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인생의 시작과 끝에는 옷 하나도 스스로 입을 수 없는 삶 그게 인생임을 새롭게 느껴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누군가를 의지하게 되고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도 누군가를 의지해야 하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이 옷 두 벌 가운데 저의 더 큰 관심은 수의입니다. 우리가 언제 그 옷을 입을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매일 매일 수의를 입은 것처럼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가끔 어제까지 건강했던 사람이 한마디 말도 남기지 못하고 끝나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언제 끝나버릴지 모르는 것이 사람의 삶입니다. 그렇게 끝날 줄을 알고 살았더라면 인생의 발자국을 이렇게 남기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사람이 자기 인생의 마칠 때를 알고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바울은 자기의 죽음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고 승리의 개선가를 불렀습니다. 그의 삶은 마치 장거리 경주를 하는 마라톤과 같은 그런 삶이었습니다. 그는 그런 삶을 훌륭하게 완수하는 승리로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본문은 바울이 그의 인생의 마지막을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보내는 고별사입니다. 오늘 우리도 바울처럼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자랑스러운 승리의 개선가를 부를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6절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여기서 관제와 같이 관제란 말씀은 구약시대에 여러 제사(번제 속죄제 서헌제 낙헌제) 있었습니다. 이러한 제사 때는 제물이 준비랍니다. 양이나 염소를 잡아 각을 뜨고 깨끗이 씻어서 여러 가지 의례를 행하는데 그 마지막 절차가 포도주를 다 쏟아붓는 바로 그것이 관제입니다.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바울은 이제 자기의 마지막 숨결을 하나님 앞에 드릴 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예감하면서 이 편지를 쓰면서 죽음을 바라봅니다

바울은 지금 감옥에서 다가올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로지 죽음을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낙심하거나 절망하는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희망적인 신뢰요 장차 받게 될 상급을 생각하며 설레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본문은 그러한 죽음의 기다림 가운데 전하는 바울의 고별사입니다.

첫째, 바울은 선한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싸움을 운동경기로 비유한 말인데요. 운동은 로마 시대에 대표적인 풍물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마지막까지 최선의 선전을 다했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에수님을 믿기 전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잡아다 감옥에 가두고 돌로 쳐서 죽이고 피를 흘리는 그런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던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후 그토록 핍박하고 증오하던 예수님을 전파하는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굶주리고 배가 파선해서 죽을 위험에 처하고 온갖 위험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바울은 죄의 용서와 구원받은 감격으로 복음 전파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생명을 건 싸움을 한 것입니다. 한 손은 믿지 않는 사람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은 하나님의 손을 잡고 복음을 증거하는 선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신앙의 길은 영적 전쟁의 길입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선한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닙니다. 오늘도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고자 하면 선한 싸움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과 희생과 섬김으로 내 믿음을 지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싸움을 싸워나가는 것입니다.

둘째, 바울은 신앙의 경주에서 승리했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이 말씀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자기의 달려갈 길을 마쳤다는 말입니다. 인생의 삶이 요람에서 무덤까지 가는 것처럼 그는 이 신앙의 장거리 경주를 눈물과 인내로 선교 여행을 했다. 이것이 바울이 달려온 길입니다.

ex:올림픽의 꽃은 마라톤입니다. 강한 페르사 군대와 약한 헬라 군대의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약한 헬라 군대가 강한 페르샤 군대를 이기고 승리를 했습니다. 그때 헬라 군 병사 한 명이 이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서 아덴까지 단숨에 달려가서 “우리는 이겼습니다”라고 말하고 그는 쓰러져 죽었습니다. 그 병사가 달려온 거리가 42.195km 마라톤 코스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눈물과 인내로 길고 긴 선교 여행을 했습니다. 바울이 달려갈 그 길은 잠깐 뛰고 마는 그런 경주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부터 숨질 때까지 뛰어가는 길이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장거리 경주와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 경주는 인내가 필요하고 눈물이 필요한 것입니다.

셋째, 바울은 믿음의 생활에서 승리했습니다. "믿음을 지켰으니"

바울은 믿음을 지켰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수많은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변함없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 지켰다는 표현은 본래 보물을 관리할 때 쓰이던 단어입니다.

여기서 보물을 관리하듯 믿음을 지켰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떠한 고난과 시련 가운데서도 성경 말씀에 어긋남이 없이 신앙생활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규정에 어긋남이 없이 질서에 순종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어떤 보물보다도 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믿음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그 어떤 보물보다도 더 귀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믿음을 내 집에 보물보다 더 잘 지키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적극적으로 이 믿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때를 얻든 못 얻든지 언제 어디서나 전도해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성경 말씀에 어긋남이 없는 생활,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생활. 그 생활이 우리의 믿음이 잘 지키게 되는 줄 믿습니다.

이렇게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고 신앙의 경주에서 승리하고 믿음의 생활에서 승리하면 우리 주님께서 상을 주실 것입니다.

8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바울은 그 당시를 지배하던 로마의 황제에게 불의하게 체포되었습니다. 그리고 로마의 법정은 그를 불의하게 단죄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억울하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마지막 순간에 자기를 정당하게 판단해 주시고 의의 면류관으로 상주실 하나님을 기대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주를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 상주실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바로 이 믿음 때문에 바울은 죽음 앞에서도 담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에게 있어서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승리요. 안식이요. 상급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언제가 다가올 죽음 앞에 당당한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남아있는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갑은 그 나이 86세 때 끌려가서 순교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죽기 전 다 된 늙은이를 죽이기가 애처로워서인지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네가 예수님을 한 번만 모른다고 해라 그러면 살려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폴리갑이 말하기를 “나는 86년간 예수님을 섬겼으나 예수님은 한 번도 나를 모른다고 한 적이 없다. 그런데 어찌 예수님을 모른다고 할 수가 있었냐? 절대로 예수님을 모른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바울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그의 생애를 바쳤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가오는 죽음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고백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으니”

저는 여러분의 남아있는 발걸음도 복음을 전파하며 승리의 개선가를 부르는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