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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사랑과 용서 행7:59-60

작성자
이 주신
작성일
2022-03-15 08:44
조회
282
용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가르침이 아니라 실천하기가 죽기보다 힘든 가르침입니다. CS 루이스는 “용서는 아름다운 아이디어다 자기가 하기 전까지는!”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피해자가 되면 용서는 실천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내 고통이 크면 클수록 더욱 힘든다 가해자가 뉘우치는 기색이 없고 오히려 뻔뻔하게 행동할 때는 눈 한번 딱 감고 받은 고통만큼 보복한 후에 하나님께 회개하고 싶은 마음마저 들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은 용서가 아니라 보복입니다. 필립 얀시의 말처럼 용서는 정말 부자연스러운 행동입니다. 용서는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용서는 하나님께 속한 십자가의 언어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하시면서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 라는 용서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와서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처형당하신 하나님의 너무도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상징합니다. 보복의 본능을 용서로 바꾸는 일은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서는 실천할 수 없습니다. 잠시 실천했다고 해도 금방 그 효력이 없어집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용서를 배웁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용서를 받는 동시에 용서를 배우는 거룩한 곳입니다. 이 십자가의 사랑을 경험한 스데반은 순교를 당하면서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라는 용서의 기도를 했습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부자연스러운 행동의 근거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만이 예수님이 주신 능력으로 가장 부자연스러운 행동인 용서와 화해를 할 수 있습니다.

스데반은 이 십자가의 사랑과 능력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용서라는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스데반은 공회 앞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겨 죽게 한 유대인의 죄에 대하여 설교를 하다가 그 설교를 듣던 유대인들이 던진 돌에 돌무덤이 되어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 충만을 받은 초대교회는 성도들의 출석수가 급격하게 증가하게 되면서 부작용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중에 헬라. 말을 쓰는 유대인들이 히브리말을 쓰는 유대인들에게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식량을 배급받을 때 자기들이 히브리인들만큼 배급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사도들이 성도들을 모아놓고 말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설교하고 기도하는 일보다 식량 분배하는 것에 분주한 것은 득이 되지 못하니 여러분 중에서 이 일을 대신에 할 사람을 선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한 자, 칭찬을 듣는 자, 성령이 충만한 일곱 사람을 선택해주시면 그들에게 식량 분배를 맡기고 우리는 기도와 설교하는 일에만 전념할 것입니다. 그러자 이것을 온 교회는 기쁘게 여기고 일곱 사람을 선출해 집사로 세우게 되었는데 스데반 집사는 그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1. 스데반 집사는 은혜와 권능이 충만했습니다.
8절 말씀에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스데반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모든 성도로부터 인정을 받았습니다.
  1. 스데반 집사님은 칭찬을 듣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믿음이 좋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로 칭찬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열심히 봉사했습니다. 사람을 사랑할 줄 알고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3. 스데반집사는 성령이 충만하여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성경과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충분한 지식으로 당시 전문가 집단인 공회원들에게 까지 설득하는 위대한 설교자였습니다. 사도행전 7장은 그가 직접 설교한 긴 내용의 설교 문입니다.

그는 살기 등등한 대적들 앞에서 조금도 위축됨이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거를 했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그는 먼저 아브라함 때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역사적인 사실을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선지자들을 통하여 메시아가 오실 것을 예언하였지만 너희 조상들은 그 선지자들을 죽였다고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너희는 또한 그 예언대로 죄인의 구원자로 오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도다. 목이 곧고 마음이 패역 하여 성령을 거스른 죄를 회개하라고 촉구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그의 설교가 마음이 찔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찔리고 죄가 깨달아지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들을 때 감동이 오고 죄가 생각날 때는 죄를 회개하고 돌이켜 새 생활을 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유대들은 마음속의 감춰진 죄를 일깨워 회개할 기회를 주신 성령의 감동을 무시하고 도리어 귀를 막고 이를 갈면서 스데반을 성 밖으로 끌고 가서 돌로 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때 스데반이 하늘을 우러러보았습니다. 자기를 죽이려고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과 에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서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계신 것을 보노라 라고 외쳤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로 하여금 다시 한번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스데반은 그들의 돌에 맞아 죽는 것보다 장차 지옥에서 고통당할 그들의 영혼이 불쌍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기도를 합니다.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그들을 위해 기도를 한다는 것은 이미 용서했다는 것입니다.

용서는 사랑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경험한 스데반은 예수님이 주신 능력으로 가장 부자연스러운 행동인 용서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예수님이 주신 능력으로 사랑과 용서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