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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예수님 중심의 가치체계 요12:1-8

작성자
이 주신
작성일
2021-02-15 12:29
조회
772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유튜브에서 짧은 시간에 기록적인 조회 수가 갱신되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강남스타일의 후속편 격인 오빤 딱 내 스타일 이란 뮤직비디오도 적지 않는 조회 수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사실 이 노래는 강남클럽이나 홍대클럽등의 이중적인 모습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 중에는 무절제한 친구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건전한 젊은이들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기서 이 노래가 고발하고 있는 것처럼 이 이중적인 모습이 이 시대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와 크리스천 문화 속에서도 나타나고 있지는 않는지 매우 우려가 된다는 점입니다.

나는 언제 어느 때나 변함없는 진정한 크리스천인가? 아니면 집에서 모습과 밖에서 모습, 교회서의 모습과 직장에서 모습이 전혀 다른 이중적인 크리스천은 아니가? 하는 것을 한번 점검해봐야 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자기중심의 가치 체계에서 예수님 중심의 가치체계로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때문에 이 가치체계가 바뀌지 않으면 평생 자신에게 묶여 이중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바로 이런 잘못된 가치 체계를 가진 사람이 등장합니다.

어느 날 예수님은 이제 하나님께서 정한 죽음의 때가 되심을 알고 베다니에 있는 나사로의 집을 방문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나사로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린 것은 그를 대신한 그의 죽음을 전제한 것이기 때문에 나사로가 살아난 사건을 예수님의 임박한 죽음과 연결시키는 것은 신학적으로 당연한 귀결입니다.

베다니는 예수님의 사역초기 사역의 축을 이루는 중요한 활동무대였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활동하실 때 자주 들리셨던 곳이 나사로의 집이었습니다. 바로 그 집에서 잔치가 열린 것입니다.

여기에 예수님과 나사로와 여러 제자들이 참석 했는데 마침 마리아라는 한 여인이 예수님 앞에 나타나더니 비싼 향유를 한 병을 예수님의 발에 붇고 자신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그러자 그 집안에 온통 향유 냄새가 진동 하였습니다.

그때 옆에 있던 가룟 유다가 왜 향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고 허비하느냐? 가룟 유다는 그것이 낭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드린 이 마리아의 헌신의 가치보다 자신의 세속적 명예와 향유의 값어치에 마음이 더 쏠린 분노의 감정을 드러낸 것입니다.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은 여행할 때 상자를 갖고 다녔습니다. 사람들은 그곳에다 돈을 넣어주었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그것으로 가난한 자들을 돕기도 하고 또한 자신들의 경비로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상자를 가룟 유다가 맡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이러한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서 돈을 가로채려 했던 것입니다.

본문은 이러한 가룟 유다를 가리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라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더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못 마땅하게 반응하는 가룟 유다에게 “가만 나두어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곧 있으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할 것이라”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장례를 예고하는 베다니에서 일어난 이 기름부음 사건은 바로 11장에 강력하게 예고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본문의 이야기는 마무리 됩니다.

본문의 사건은 유월절 엿새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이미 체포령이 내려져 있어서 머지않아 곧 죽으시게 될 상황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이 사실을 미리 알고서 약 330그램의 무게에 해당하는 나드향의 기름을 가지고 왔던 것입니다.

이 기름은 인도의 산악지대에서 자라는 나드식물 뿌리에서 추출한 향으로300 데나리온의 값어치가 나가는 당시 노동자의 1년 임금에 해당하는 귀한 물건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이 귀한 물건을 마음을 다하여 예수의 발에 부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예수님의 발에 기름을 부은 것은 바로 곧 죽음의 길을 가실 예수님을 거룩히 구별하는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마리아의 행동에 대해 유다의 반응입니다.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라고 책망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이것은 마리아가 예수님의 죽으심을 미리 알고 예수님을 위해 장사지내기 위해 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장사지내기 위해 그녀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것으로 경배한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마리아의 이러한 행동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행동으로 인정하는 신앙고백인 셈입니다.

마리아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경배와 섬김의 대상이요, 구원이요, 생명이었습니다. 자기 삶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는 구세주였습니다.

기록자는 마리아의 행동을 통해 예수님은 그 어떤 재물로도 온전히 경배를 받으시기에 부족하며 따라서 예수님은 마리아의 경배를 당연히 받으실 만한 분이라는 사실을 강조한 것입니다.

교회를 조금 다니면 학습을 받고 그 다음에 문답을 거쳐서 세례를 받게 됩니다. 문답을 할 때는 공중 앞에서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죄를 용서해 주신 구세주로 신앙고백을 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조금만 오래 다니는 분이라면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 되심을 잘 알고 믿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 도 잘 압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예수님을 섬기는 일은 우리가 아는 만큼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아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다를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님을 소홀히 대하는 사람들 중에 가끔은 마음이 중요한 거야라고 말하면서 궁색한 변명을 하는 것을 봅니다. 하지만 사실은 모르니까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가치체계가 아는 만큼 바뀌지 않으면 아는 것 같아도 열어보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사람들에 속합니까?

저는 여러분이 아는 만큼 완전하게 예수님을 섬기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적어도 그것의 반만큼이라도 예수님을 섬길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