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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사랑의 리더십 고전13:1-13
작성자
이 주신
작성일
2020-11-14 10:39
조회
700
아이가 처음 피아노를 배워 어떤 곡을 연주하게 되면 보통 띵, 띵, 띵… 하면서 한음씩 끊어 치다가 시간이 지나 좀 익숙해진 후에는 "띵띵띵 띵띵띵" 하면서 한 소절씩 끊어 칩니다.
또 몇 년이 더 흘러 같은 곡을 친다면 이번엔 뚜르르르… 뚜르르르... 하면서 물결이 흘러가듯 부드럽게 연주를 하게 되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 차이가 바로 여러 요소들을 하나로 묶는 힘 흐름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초보자일 때는 교본대로 틀리지 않게 한음 한음 치는데 혼신의 힘을 집중합니다. 물론 틀리지는 않지만 듣는 사람은 어색한데도 그것을 본인만 모른체 그저 땀 흘리며 끝까지 쳐내는 자신이 장할 뿐입니다. 그러다 좀 원숙해지면 한 소절씩 묶어 치고 나중엔 전체 곡을 한 흐름으로 엮어서 부드럽게 조화를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어느 분야든지 처음 시작할 땐 자신의 전문 분야만 보이고 그것을 교과서처럼 한음 한음 잘 치는 것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다른 이들과의 조화나 연결은 잘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차츰 성숙해지면서 다른 이들과 연결하는 법, 그리고 분야가 다른 것들을 조화시켜 하나의 흐름으로 만들어야 함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저도 비슷한 과정의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설교하는 일이나 대화하는 일이나 처음엔 무조건 교과서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뭔가 어설프고 딱딱하고 여백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계속교육의 필요성, 인간관계의 중요성, 전도와 아웃리치의 중요성, 그리고 돌출된 삶의 파편들을 점점 다듬고 균형을 이루는 가는 것을 조금씩 조금씩 알게 된 것 갇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하나의 큰 흐름으로 연결시킬 때 저 자신이 먼저 점점 자라가도록 배워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강렬하게 깨닫는 것은 이 모든 요소들을 하나로 묶는 힘은 역시 사랑이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대하듣지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는 일입니다.
남을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믿어주고 또 믿어주는 것입니다. 만약 두 사이에 관계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것은 내가 그 사람에게 후한 점수를 주지 않은 증거일 것입니다. 만약 상대에게 진실을 얘기해 주고 싶다면 먼저 그 사람에게 먼저 A학점을 주고 시작해야 할 것입다.
밴 젠더가 지휘하는 보스턴 필하모닉에는 전세계 젊은 음악천재들이 모입니다. 그런데 동양권에서 온 친구들은 특히 등수에 대단히 민감해서 젠데에게 여간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이미 탁월한 천재들이 모인 구룹에서 또 그 아이들 사이에서 등수를 매긴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 클래스를 일단 A학점을 주고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매주 자신이 왜 A학점 학생인지 이야기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이런 학습 방법은 서서히 학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어서 그들이 인생을 보는 시각 자체를 바꿔 버린다는 것입니다. 교수가 자신을 A급 학생으로 전제하고 대해주는 사실이 그들의 자존감을 높이고 서로 경쟁 상대가 아닌 팀원으로 보게 한다는 것입니다.
고전13장은 사랑장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사랑은 그 사람의 최선의 가능성을 믿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세상에 누가 뭐라 해도 우리의 가장 좋은 면을 믿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에수님은 그 누구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이혼을 여러 번 했던 사마리아 여인도, 치유 불가능한 문둥병 환자도 현장에서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우리도 에수님이 포기하지 않는 한 사람이었기에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줄수 있는 단 하나의 선물 단 하나의 축복은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지 않는 것은 교만입니다. 교만이 무엇입니까? 잘 낫다고 뽐 내는 것입니다. 남의 허물을 덮어 주거나 가리워 주지 못하고 거듭거듭 말하는 것입니다. 가장 큰 교만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교만은 내가 주인처럼 행세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핍된 사랑, 외곡된 사랑, 자아중심적인 사랑, 그리고 이기적 사랑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만은 병든 사랑을 받아서 생긴 결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의 바다에 함몰되면 교만이 빠져 죽게 되어 있습니다. 아집, 독선, 열등감, 증오, 우울, 그리고 모든 슬픔은 함께 익사합니다. 그리고 옥합을 깨는 파격적인 헌신이 나오고 감사와 기쁨이 터져 나오게 될 것입니다.
인간세계의 영원한 가치는 사랑을 주고 받음에 있습니다. 가장 고상한 것도 사랑이며 가장 부패하기 쉬운 것 역시 사랑입니다. 사랑을 주는 사람이 있기에 사랑을 받는 사람도 존재합니다. 이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받는 사람을 동시에 행복하도록 이끌어 올릴 것입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셨다는 명제에 있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성경구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6)
백성의 영광은 왕의 사랑을 얻는 것입니다. 피조물의 영광은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받음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은 삶의 일부분만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안겨주는 축복은 하나님의 사랑가운데서 우리 자신을 재발견데 있습니다. 또한 누구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사랑의 비밀을 터득하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네 이웃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야단이 이닙니다. 잔소리도 아닙니다. 오직 사랑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 사랑을 흘려 보내는 파이프요 수원지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A학점으로 인정받고 또 다른 사람을 A학점으로 인정할 줄 아는 사랑의 리더로서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 몇 년이 더 흘러 같은 곡을 친다면 이번엔 뚜르르르… 뚜르르르... 하면서 물결이 흘러가듯 부드럽게 연주를 하게 되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 차이가 바로 여러 요소들을 하나로 묶는 힘 흐름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초보자일 때는 교본대로 틀리지 않게 한음 한음 치는데 혼신의 힘을 집중합니다. 물론 틀리지는 않지만 듣는 사람은 어색한데도 그것을 본인만 모른체 그저 땀 흘리며 끝까지 쳐내는 자신이 장할 뿐입니다. 그러다 좀 원숙해지면 한 소절씩 묶어 치고 나중엔 전체 곡을 한 흐름으로 엮어서 부드럽게 조화를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어느 분야든지 처음 시작할 땐 자신의 전문 분야만 보이고 그것을 교과서처럼 한음 한음 잘 치는 것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다른 이들과의 조화나 연결은 잘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차츰 성숙해지면서 다른 이들과 연결하는 법, 그리고 분야가 다른 것들을 조화시켜 하나의 흐름으로 만들어야 함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저도 비슷한 과정의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설교하는 일이나 대화하는 일이나 처음엔 무조건 교과서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뭔가 어설프고 딱딱하고 여백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계속교육의 필요성, 인간관계의 중요성, 전도와 아웃리치의 중요성, 그리고 돌출된 삶의 파편들을 점점 다듬고 균형을 이루는 가는 것을 조금씩 조금씩 알게 된 것 갇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하나의 큰 흐름으로 연결시킬 때 저 자신이 먼저 점점 자라가도록 배워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강렬하게 깨닫는 것은 이 모든 요소들을 하나로 묶는 힘은 역시 사랑이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대하듣지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는 일입니다.
남을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믿어주고 또 믿어주는 것입니다. 만약 두 사이에 관계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것은 내가 그 사람에게 후한 점수를 주지 않은 증거일 것입니다. 만약 상대에게 진실을 얘기해 주고 싶다면 먼저 그 사람에게 먼저 A학점을 주고 시작해야 할 것입다.
밴 젠더가 지휘하는 보스턴 필하모닉에는 전세계 젊은 음악천재들이 모입니다. 그런데 동양권에서 온 친구들은 특히 등수에 대단히 민감해서 젠데에게 여간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이미 탁월한 천재들이 모인 구룹에서 또 그 아이들 사이에서 등수를 매긴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 클래스를 일단 A학점을 주고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매주 자신이 왜 A학점 학생인지 이야기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이런 학습 방법은 서서히 학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어서 그들이 인생을 보는 시각 자체를 바꿔 버린다는 것입니다. 교수가 자신을 A급 학생으로 전제하고 대해주는 사실이 그들의 자존감을 높이고 서로 경쟁 상대가 아닌 팀원으로 보게 한다는 것입니다.
고전13장은 사랑장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사랑은 그 사람의 최선의 가능성을 믿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세상에 누가 뭐라 해도 우리의 가장 좋은 면을 믿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에수님은 그 누구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이혼을 여러 번 했던 사마리아 여인도, 치유 불가능한 문둥병 환자도 현장에서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우리도 에수님이 포기하지 않는 한 사람이었기에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줄수 있는 단 하나의 선물 단 하나의 축복은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지 않는 것은 교만입니다. 교만이 무엇입니까? 잘 낫다고 뽐 내는 것입니다. 남의 허물을 덮어 주거나 가리워 주지 못하고 거듭거듭 말하는 것입니다. 가장 큰 교만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교만은 내가 주인처럼 행세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핍된 사랑, 외곡된 사랑, 자아중심적인 사랑, 그리고 이기적 사랑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만은 병든 사랑을 받아서 생긴 결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의 바다에 함몰되면 교만이 빠져 죽게 되어 있습니다. 아집, 독선, 열등감, 증오, 우울, 그리고 모든 슬픔은 함께 익사합니다. 그리고 옥합을 깨는 파격적인 헌신이 나오고 감사와 기쁨이 터져 나오게 될 것입니다.
인간세계의 영원한 가치는 사랑을 주고 받음에 있습니다. 가장 고상한 것도 사랑이며 가장 부패하기 쉬운 것 역시 사랑입니다. 사랑을 주는 사람이 있기에 사랑을 받는 사람도 존재합니다. 이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받는 사람을 동시에 행복하도록 이끌어 올릴 것입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셨다는 명제에 있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성경구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6)
백성의 영광은 왕의 사랑을 얻는 것입니다. 피조물의 영광은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받음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은 삶의 일부분만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안겨주는 축복은 하나님의 사랑가운데서 우리 자신을 재발견데 있습니다. 또한 누구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사랑의 비밀을 터득하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네 이웃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야단이 이닙니다. 잔소리도 아닙니다. 오직 사랑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 사랑을 흘려 보내는 파이프요 수원지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A학점으로 인정받고 또 다른 사람을 A학점으로 인정할 줄 아는 사랑의 리더로서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