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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죽음의 정복자 예수님 계1:17-20

작성자
이 주신
작성일
2021-04-15 07:52
조회
313

사람은 원래 의심하기를 잘합니다. 그래서 바른말을 해도 잘 안 믿으려고 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더구나 황당한 소리를 하면 안 믿는 것이 정상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황당한 말이 무엇일까요?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만큼 황당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가장 믿기 어려운 말입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제자들을 통해 성경 여기저기서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기로 작정하시고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노상에서 제자들을 향해서 자주 같은 말씀을 반복하셨습니다. '인자가 예루살렘에 가면 사람들에게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죽은 후에 사흘 만에 살아나리라' 제자들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를 못했습니다. '어떻게 죽은 지 사흘 만에 사람이 살아날 수 있겠는가? 무슨 말씀인가?' 이처럼 못 알아 들으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안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장사 지낸 지 사흘째 되던 날 새벽에, 무덤을 찾아갔던 여인들이 달려와서 예수님이 살아나셨다고 제자들에게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제자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그 소리가 너무 허탄하게 들려서, 말 같지도 않은 소리 같아서 안 믿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마 제자들이 여인들을 보면서 속으로 걱정을 많이 했을 것 같습니다. 특별히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여인을 보면 더 그랬을 것입니다. 너무 예수님을 그리워 하다가 정신이 약간 이상해졌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께서 열 제자가 있는 방에 나타나셨습니다. 손을 내미시고 "내가 부활했다."고 하시면서 자신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주님을 만나고는 제자들이 더 이상 의심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자리에는 도마라는 제자가 빠져있었습니다. 나중에 도마가 돌아와서 다른 제자들이 예수님이 살아나셨다고 말하자 안 믿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생각을 말했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손바닥에 있는 못 자국을 내 손으로 직접 만져보고, 예수님의 옆구리에 손을 밀어 넣어서 그 창에 찔린 자국을 실제로 확인한 다음에라야 그분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지, 그전에는 절대로 믿을 수가 없다."

도마의 이런 마음을 주님이 아시고 나중에 찾으신 다음에 도마에게 손을 만지게 하시고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게 하셨습니다. 너무 감격해서 도마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며 말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20:29)

우리가 이와 같은 제자들의 행적을 살펴보면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고, 더욱이 죽은 지 사흘 만에 어떤 사람이 살아났다는 것은-비록 그 사람이 예수님이라 하더라도- 인간으로는 믿기가 어려운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이 굴러 나가면서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예수님이 부활하시는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군병들도 보지 못했습니다. 너무나 신비스러운 과정입니다. 게다가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말을 퍼뜨리는 사람들이 여자들이었습니다. 그 당시 여자들은 재판석에서 증인으로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여자들의 입에서 무슨 옳고 그른 말을 분별할 수 있겠느냐며 증인으로 채택도 안 하던 시대입니다.

학자들의 말을 들으면 창녀였을 지도 모른다고 하는 죄인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예수가 살았다고 떠드니 누가 그 말을 믿겠습니까?

따라서 성경에 나와 있는 증인들을 보아도 그렇고, 여러 가지 사실들을 미루어 보아도 그렇고, 믿고 싶어도 도무지 믿을 수 없게 만드는 증거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겠다고 마음에 작정하고 성경을 보는 사람에게는 안 믿을 수 있는 이유와 근거가 얼마든지 찾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겠다고 결심한 사람이 보면 또 믿을 수 있는 이유와 근거가 충분히 있습니다.

성경은 양극을 달립니다. 그래서 믿지 못하는 사람을 끝까지 믿지 못하게 막아버립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언제든지 믿을 수 있도록 열어줍니다. 마치 예수님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자기의 부활한 몸을 보여주시고, 예수님이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지 않은 사람은 그 누구에게도 자기 몸을 보여주지 않으신 것처럼, 믿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끝까지 믿지 않을 수 있는 많은 근거를 성경에서 찾아내도록 성경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우리가 믿고 안 믿는 것이 예수님의 부활이 시실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든지 안 믿든지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예수님의 부활이 나와 직접적인 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믿음이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울고 있는 마르다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마르다야, 내가 곧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느니라. 네가 이것을 믿느냐?' 고 믿음을 요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나에게 직접적인 관계가 있게 되려면 꼭 믿어야 합니다. 믿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찬양하는 영광스런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예수를 믿으려는 마음으로 보니 성경을 읽을 때마다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서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생각할 때마다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할 수가 없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묻혔던 무덤이 비어있는 것을 확인한 사람이 많습니다. 로마 군인들로부터 시작해서 살아나신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 수백 명에 이릅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제자들의 달라진 모습입니다. 며칠 동안 방문을 걸어 잠그고 틀어박혀 있던 제자들이 갑자기 하루아침에 방문을 박차고 나와서 예수 살아나셨다고 외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더 놀라운 증거가 있습니다. 왜 대제사장들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자고 소리치던 폭도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이 거짓이라면 얼마든지 뒤집고 다니면서 이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증거해서 예수께서 살았다는 자들을 핍박하고 감옥에다 집어 넣을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이와 같은 성경의 외적 증거가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 안 믿을 수가 없습니다.

동시에 우리에게는 더 큰 증거가 있습니다. 그것은 내적증거입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성경을 볼 때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안 믿을 수 없도록 우리의 마음의 눈을 열어주십니다. 외적 증거, 내적 증거가 서로 일치하면서 나도 모르게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살아계신다는 믿음이 있음을 하나님 앞에 감사합시다.

여러분 예수님은 살아나셨습니다. 그는 살아나셔서 생명의 주가 되셨습니다. 만왕의 왕이 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손에 쥐신 가장 존귀하신 분이 되셨습니다.

죄는 이 세상에 죽음을 가져 왔습니다. 죽음보다 이 세상에 강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죽음이 왕 노릇 한다고 말했습니다. 폭군이라는 말입니다. 그곳은 황량한 계곡입니다. 그 자리에서는 인생의 성패, 승자와 패자, 성공자와 실패자라고 하는 어떤 구별도 그 자리에서는 하등의 의미가 없습니다. 그만큼 죽음은 막강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를 새파랗게 질리게 만들고 완전히 기를 꺾어 버립니다. 이것이 죽음입니다.

그러나 죽음은 예수님 앞에 정복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인 이상 우리에게는 진정한 죽음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죽음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놓고는 죽음을 잔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시인들은 죽음을 일컬어 요단강을 건너가는 수영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말을 했습니다. 죽음이 무엇입니까? '썩을 것을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고전15:42) 다시 사는 과정이요, 약한 것을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사는 과정이요,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사는 과정이요, 육의 몸을 심고 영의 몸으로 다시 사는 과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후로는 우리 모두에게는 진정한 의미의 죽음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앞에는 부활하신 주님과 영원히 살 그날만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죽음의 도구였지만 부활하신 주님으로 인하여 생명의 보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죽인 십자가, 그것은 사형틀이고 사형의 도구였지만 예수님이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그 십자가는 우리 모두에게 생명의 보좌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생명을 우리 안에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이 생명을 누리면서 주님과 함께 살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부활이 주는 메시지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면 허무가 날아갑니다. 죽음의 불안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메시지를 전하는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