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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감동을 주는 사람 잠11:13

작성자
이 주신
작성일
2021-07-15 18:32
조회
142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결함을 가진 약한 존재들입니다. 때문에 대인관계를 해 나가는 과정에서 누군가에 상처를 주기도 하고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이것이 이 땅을 사는 모든 사람의 현실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다른 사람과 완벽한 대인관계를 구사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라면 서로가 서로를 용서하고 배려하고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셉은 고대 이집트가 직면했던 위기를 극복해낸 탁월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원래 그는 국가를 경영해나갈 수 있는 정치적 힘을 갖춘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권력의 중심부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던 노예요 죄수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그가 나이 서른에 국가위기 극복의 핵심으로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은 주변을 감동시킬 수 있는 인격적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집트의 흉년은 단순한 지역적 흉년이 아니라 전 아프리카 대륙의 흉년으로 볼 수 있는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이집트는 원래 비가 잘 내리는 곳이 아닙니다. 지금도 카이로는 1년 강우량이 100㎜ 정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러한 때 하나님께서는 이미 요셉으로 하여금 바로 왕의 꿈의 해몽하게 해서 이집트의 7년 흉년을 대비케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의 제안대로 7년 동안 풍년들었을 때 곡식을 잘 저장해서 7년 흉년을 극복하므로 바로 왕의 왕권과 국고를 강화 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국가적 위기를 해결한 요셉의 최대 요인은 무엇보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흡인력이었고 이 흡인력의 근원은 그의 인격이었습니다.

그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관용과 남의 허물을 덮을 줄 아는 포용력이 깃든 성숙한 인격을 지녔던 것입니다. 이런 인격적 장점은 지도력으로 이어졌고 주변에 그를 돕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함께 일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관리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했습니다.

한때 우리는 지식과 정보의 힘이 사람과 세상을 움직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초등학생들까지라도 고도로 정보를 잘 활용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지식과 정보만 가지고서는 더 이상 차별 화된 능력을 주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물론 21세기에도 지식산업 정보의 힘은 여전히 유효한 성장 동력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주변을 감동시킬 수 있는 인간 내면에서 나오는 성숙한 인격의 향기로움이 가장 큰 지도력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감성지수(EQ)를 말하고 감성경영 고객 감동주의를 말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대를 움직이는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적격한 실력과 성숙한 인격을 겸비해야되는 것입니다. 이 둘이 합하면 감동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변에서부터 시대가 직면한 문제들까지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아무리 뛰어날지라도 그 인격이 건강하지 않으면 그 실력이 오히려 아주 위험한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감동시키고 미래 사회의 중심에 설 수 있으려면 우리의 주장들(사랑. 희생. 경건. 절제. 용서. 인내)이 진심이라고 증명돼야 합니다. 무엇보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관용과 남의 허물까지도 덮을 줄 아는 포용력이 깃든 성숙한 인격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일생동안 배워야 할 것이 바로 남의 허물을 덮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삶 자체가 죄와 모순덩어리이기 때문에 만일 덮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우리는 평생 남의 실수나 바라보고 살수 밖에 없습니다.

폴 투루니의 비밀이란 책에 남의 비밀을 알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우리가 알아야 할 세 가지를 일러줍니다. 첫째 사람은 누구나 자기 비밀이 있다. 둘째 남의 비밀도 자기 비밀처럼 잘 지켜주어야 한다. 셋째 사람은 자의에 의해서만 그 비밀을 포기할 수 있다.

아브라함의 아들 함은 아비의 하체를 보고 드러냄으로 자손 대대로 형제의 종이 되는 가문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고 덮어 주고 자손 대대로 축복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흔히들 인간관계는 비밀을 알고 싶은 호기심에서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비밀은 반드시 자기가 드러낼 때 고백이 되고 아름다운 것이지 남이 드러내면 폭로되고 상처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허물을 덮어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우리가 믿는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의 죽음으로 십자가에서 덮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냥 덮은 것이 아니라 덮고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깊은 강물에 우리 죄를 던지고 낚시금지 라고 써 붙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이라면 우리는 이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번 예수님께 회개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잊어버리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생명으로 믿고 회개하므로 모든 죄를 이미 용서받았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전능하신 분이 잊어버린 죄를 자꾸 들춰내 죄책감에 붙잡혀 살게 하려고 합니다.

사랑은 실수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 잘못을 다시는 기억치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은 남의 죄를 다시 심판할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더 허물을 덮는 삶을 통하여 이 메마르고 거친 세상을 감동시켜야 할 시대상황인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은 우리가 가진 기독교 교리나 조직체계 전통의 자랑스러움보다 주변을 감동시키는 우리의 인격적 성숙함에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다.

 

저는 여러분이 허물을 덮는 인격적 감동으로 시대를 움직이는 리더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