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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고통은 성숙의 길 히5:8-10

작성자
이 주신
작성일
2022-06-15 14:13
조회
643

인도에서 한센 병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봉사했던 브랜드 박사(Dr. Paul Brand)는 “고통 없는 지옥” 이란 말을 했습니다. 그가 이런 말을 쓴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쥐들이 병실로 들어와서 한센병 환자들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뜯어 먹는데도 한센병 환자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쿨쿨 잠을 잡니다. 어제 저녁까지 멀쩡하던 손가락이 아침에 일어나 보니 없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밤에 병원을 떠나는 한센병 환자들은 야간 보호를 위해 고양이를 데리고 가는 것이 필수였습니다. 이런 장면을 본 브랜드 박사는 “고통이 없는 것, 고통이 있는데도 못 느끼는 것이 지옥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박사는 한센 병자들의 고통 불감증을 치료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 결과 고통 경보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수백 번 사용하면 부식되기 때문에 또 다른 경보기를 사서 달아야 합니다. 박사는 고통 경보기 제작을 위해 5년간 수백만 달러를 투입했다가 결국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브랜드 박사가 그때 하나님, 고통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몸에 고통 경고 체계를 붙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몸에 통증을 느끼는 자각 신호를 보내는 것은 몸에 이상이 생겼으니 그것을 치료하라는 사인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몸에 수백만 개의 경보기를 주셔서 우리 몸을 보호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고통의 기능을 음미하지 못하고 고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도 드리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고통을 통해서 순종을 배우심으로써 온전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고통을 통한 순종 학습이란 일반법에서 제외되시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귀한 지위에 계셨고 또 그것을 의식하고 계셨지만, 고통 속에서의 순종이란 진리를 체험적으로 기꺼이 배우셨습니다.

"고난으로 순종을 배웠다"라는 말은 그가 고난 겪으시기 전에는 순종이 무엇인지 모르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서 배움은 모르는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체험으로 겪어서 배우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고통을 통해서 순종을 체득하심으로써 완전한 대제사장으로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고통을 통해서 순종을 배울 때 그리스도처럼 이미 순종하던 상태에서 순종을 체험적으로 익히는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고통을 통해서 불순종의 상태에서 순종의 상태로 성숙해집니다.

평소에는 마음대로 살다가도 몸이 아프고 나면 “이제 바로 살아야지!” 하고 과거보다 더 정신을 차리고 더 바로 살게 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고통을 통해서 순종하는 신자로 성숙할 때 다른 사람들에게 효과적인 구원의 통로가 됩니다. 우리가 바로 살 때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바로 사는 모습, 즉 밝은 빛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고 복음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음악가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는 눈이 잘 보이지 않는 고통을 겪고 살았습니다. 그가 19세 때 오케스트라에서 첼로를 연주했습니다. 그는 책상 등에 있는 악보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첼로 연주하기 위해서는 악보를 외워야 했습니다.

어느 날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몸이 아파 결석하게 되었습니다. 오케스트라 단원 중에 악보 전체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젊은 토스카니니밖에 없었습니다. 토스카니니는 어쩔 수 없이 지휘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는 악보를 다 외우고 있는 탓에 악보를 보지도 않고 지휘했습니다. 그때 청중은 우렁찬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 후 토스카니니는 계속 지휘했고 청중은 계속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토스카니니가 눈이 나쁘지 않았다면 악보를 외울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가 악보를 외우지 못했다면 긴급 상황 속에서 지휘자로 발탁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지휘자로 발탁되지 않았다면 유명 지휘자로 성숙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눈이 잘 보이지 않는 고통이 오히려 유명한 지휘자로 성숙하는 길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고통을 통해서 성숙하게 되면 마음의 상처에 대해 성숙하게 대처하게 되면서 많은 상처의 치유를 체험합니다. 유아들은 걸핏하면 울고 보채지만, 성인들은 웬만해도 울지 않고 마음의 상처와 육체의 고통을 잘 견뎌냅니다. 성숙하면 치유와 회복을 체험하게 됩니다. 성숙하면 장기적으로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고 풍요로운 인생을 체험합니다.

고통은 분명히 좋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삶의 일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고난을 겪는가를 알아야 영적으로 성숙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겪지 않아도 될 수 있는 고통은 지혜롭게 피해야 하지만 필요한 고통은 겪어야 합니다. 바르지 못한 일을 앞에 두고 남들과의 알력을 피하고 타협하는 것이 힘이 덜 든다고 하여 타협의 길을 택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도 불필요한 고통은 피하셨으나 십자가의 길은 의도적으로 선택하셨습니다. 십자가 고통의 길이 우리 모두를 위해 구원의 열매를 맺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고통을 즐기지는 말아야 하지만 겸손하게 견뎌야 합니다. 우리가 고통을 당할 때 허영과 교만 때문에 “이건 별거 아니야. 왜 내가 당해야 해? 나는 착하게 살았는데. 이건 불편한 거니까 나는 겪지 않을 거야”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이면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자신을 비우고 낮추어 견디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당할 십자가의 고통을 고통으로 그대로 지적하셨습니다. 그가 자기의 고통을 부인하셨다면, 제자들은 그분의 희생 대가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고통을 당할 때 겸손한 마음으로 남들의 도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남들에게 의존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든지 자신의 짐을 남들에게 지우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면 안 됩니다. 남들의 도움을 받기 싫어하는 것은 지체의 원리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앙 성장에 장애가 됩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마 26:28). 예수님은 초연의 방식이 아니라 연관의 방식, 즉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길을 택하셨습니다.

고통을 당할 때 가해자에게 복수하지 말고 가해자를 사랑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복수하지 말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복수하는 것보다 화해하는 것이 더 고귀한 사명입니다.

고통을 당할 때 가해자에 의해 통제되지 말고 자기 자신을 통제해야 합니다. 우리가 악한 사람을 보면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도 그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상처받을 때 상처받은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게 되기 쉽습니다. 우리는 가해자와 대면해서 용서하고 화해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향해서 욕하시지 않고 복수하시지도 않고 협박하시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가해자가 예수님의 마음을 통제하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셔서 마침내 “다 이루었다!”라고 선언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고통을 당할 때 원망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신 분이시고, 우리에게 모든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은혜로운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욥이 고백한 대로 고통을 통해서 내게 은혜로운 변화의 작업을 하시고 계십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라고 고백하고 행동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나는 나의 고통의 길을 모르지만, 하나님은 잘 아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연단 하셔서 나의 속에 있는 불순물을 제거하시고, 나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전하는 순수한 통로로 만들어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기까지 갈등을 겪을 수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에 항복하고 순복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내 속에서 주님의 뜻을 이루도록 우리는 조용하고 겸손하게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단련하셔서 나를 정금까지 나오게 하시기까지 겸손히 고통을 인내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이 내 속에 이루어지기까지 나 자신을 내드려야 합니다.

고통을 바르게 통과하면 우리 속의 불순물이 제거되고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전달하는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이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는 성숙하게 됩니다.

우리가 성숙하면 성숙한 만큼 우리 속의 상처가 근본적으로 치료되고 우리는 삶의 회복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폴 브랜드 박사처럼 고통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고통을 통해서 인격과 삶에 더욱 성숙에 이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