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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변치 않는 구원 사7:1-9

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2020-08-27 15:54
조회
717
사람은 일반적으로 남을 공격할 때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려고 합니다. 남을 끌어들임으로써 그 사람을 미워하는 것에 대한 자신의 명분을 확실하게 세울 수도 있고, 상대를 고립시킬 수도 있고, 또 보다 더 치명적으로 공격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를 미워하게 되면 우선 주변에 자기편이 없나 그것부터 찾으려는 습성을 나타내게 됩니다.

사람의 이런 습성은 국가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나라가 위험에 처해 있다고 생각되면 재빨리 주변의 나라를 자기편으로 만들어서 상대 나라를 공격을 합니다. 이렇게 해서 결국 나라간에 전쟁이 발생하게 됩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이런 일이 예나 지금이나 늘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인간의 악한 본성이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아람과 이스라엘과 유다라는 세 나라가 등장하는데 이 세 나라도 이러한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로 둘로 나뉘어 진 뒤에 서로 가깝게, 때로는 적대시하면서 지내 왔습니다.

본문이 기록될 당시에는 아주 적대시하던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적대감 사이에는 미묘한 정치적 문제가 깔려 있는데요 당시 유다는 새로운 강대국으로 등장하고 있던 앗수르와 비교적 가깝게 지냈습니다.

유다가 앗수르와 가깝게 지내자 혹시 유다가 앗수르와 짜고 자신의 나라를 쳐들어오지는 않을까 염려했던 이스라엘은 아람과 동맹을 맺고 힘을 합쳐서 유다를 선제공격을 해서 비교적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자신들의 뜻대로 유다를 조정 할 수 있는 허수아비 왕을 세우고자 했습니다.

전쟁초반에 아람과 이스라엘은 유대의 엘랏이라는 곳에서 유다 사람들을 다 몰아내고 엘랏을 자신들의 성읍으로 만들었습니다. 유다의 많은 백성을 포로로 잡아 다메섹으로 끌고 가거나 살육했습니다. 이 전쟁은 이렇게 해서 아람과 이스라엘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나는 듯 했습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1절에 아람과 이스라엘이 유다를 능히 이기지 못하였다고 되어 있는데, 어떻게 해서 전쟁 초반부터 이렇게 유다를 무찌를 수 있었는가? 그것은 바로 아하스라는 유다왕 때문이었습니다.

아하스하면 떠오르듯 그는 하나님께 많은 악을 행한 왕입니다. 그는 산 당과 산 위와 모든 나무 아래서 우상을 만들어 놓고 섬겼습니다. 심지어 자기 아들을 우상에게 드리기 위해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유다 백성들도 왕을 따라 악을 행하며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우상을 섬기며 악을 자행할 때 하나님께서 이웃나라를 들어 유다를 징계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조금 징계하신 후에 이사야 선지자를 불러 아하스에게 보내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쳐들어오기는 했지만 그들은 연기 나는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다”는 말씀을 전달하도록 하였습니다. 연기 나는 부지깽이 그루터기'란 불이 붙어서 다 타서 연기만 모락모락 나는 남은 나뭇가지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람과 이스라엘을 이런 나뭇가지에 비유하시면서 그들의 침략이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 곧 망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 말씀하신 데로 이스라엘은 유다를 쳐들어온 지 65년만에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대로 유다를 침공한 아람과 이스라엘을 물리치시고 유다를 구원하셨습니다. 비록 아람과 이스라엘이 유다를 침공해서 수많은 약탈과 살인을 자행했지만 유다를 끝까지 버리지 않으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전체적인 상황을 한 절로 요약해서 이 전쟁의 결과를 기록해 놓은 구절이 1절 끝부분입니다.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왕 베가가 올라와서 이스라엘을 쳤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자 하시는 사실은 하나님은 약속의 실신한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다를 구원하신 것은 아하스가 하나님께 마음을 바로잡고 잘 섬겼기 때문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 자신의 신실한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2절의 다윗의 집이라는 표현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다윗의 집이란 유다를 가리킵니다. 이렇게 구약성경이 유다를 유다라고 말하지 않고 '다윗의 집'이라고 말할 때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유다라는 나라가 저절로 생겨서 저절로 유지되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과 언약을 맺으셔서 세우신, 그래서 그 언약으로 말미암아 유지되는 나라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에 다윗과 언약을 맺으셔서 장차 다윗의 나라를 지키고 보존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언약은 순종하면 지켜지고 잘못하면 깨어진다는 그런 것이 아니라 다윗의 자손이 잘못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으신 언약을 기억하시어 보호해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유다는 하나님 약속에 의해 다스려는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은 언약을 잊지 않고 기억하셨기에 유다를 조금 징계하신 후에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한번 맺으신 언약은 이렇게 영원히 변치 않는 것입니다.

성경은 약속의 책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하나님의 약속이 분명하게 확실하게 자동영상처럼 떠오르는 약속이 몇가지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신실하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언약을 맺어 주심 때문에 그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심으로써 우리와 영원히 변치 않는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이 구원은 그 옛날 하나님께서 다윗과 언약을 맺으신 것처럼 영원히 변함없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할 때가 더 많고 그분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가 늘 구원을 소망하고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한번 택하시면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신실한 약속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적인 구원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도 늘 보호하시고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때로는 전혀 솟아날 것 같지 않은 절망감에 빠져 있을 때에도, 도무지 해결이 보이지 않는 끝없는 터널과 같은 어둠 속을 달려 갈 때도, 여전히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피로 사신 자신의 자녀들을 결코 버리거나 어둠 속에 방치해 두지 않으신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늘 변함없이 자신의 약속에 충실하시어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잘 안다면, 그분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귀하고 큰 것인가를 바로 깨닫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어떠한 상황에 처할지라도 나를 지키시고 더 나은 길로 인도하실 약속의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합시다.

저는 여러분이 우리를 끝까지 도우시고 끝까지 힘 주시는 하나님을 힘입어 더욱 선을 행하기를 힘쓰며 그분의 이름을 드높이는 삶을 살려고 애써 나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