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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집념의 삶 빌3:13-14

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2020-08-27 15:54
조회
435

집념이란 한 가지 일을 붙잡고 온 몸과 마음을 쏟는 것을 말합니다. 어느 한 가지에 역량을 집중해서 끝까지 달려가는 사람 목표에 전념하다가 넘어져도 금새 목표를 향해 다시 일어서는 사람을 가리켜 집념이 강한 사람이라 표현합니다.

반면에 잡념에 둘러쌓인 사람은 머리를 지배하는 온갖 잡다한 생각들로 인해서 어느 것 하나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집념과 잡념은 점 하나 차이이지만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얼마 전 집념이 가져오는 결과를 잘 보여주는 예가 전북 완주에 사시는 차사순 할머니 이야기입니다. 미국의 한 일간지에 까지 “960번째 드디어” 라는 제목 아래 이 할머니 이야기가 실린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도전정신을 가르치고 싶은가? 그렇다면 차 할머니의 사진을 눈에 잘 띄는 곳에 걸어두라 아이들이 누구인지 물어보면 자그마치 960번의 실패 끝에 운전면허를 따낸 69세의 한국인 할머니라고 말하라."

이 신문는 이 할머니야말로 현대 부모들이 자녀에게 기억시켜야 할 집념과 끈기의 귀감으로 소개하였습니다.

 실제로 할머니는 합격하기까지 5년 여 동안 거의 매일 시험에 응시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실망감과 그 모든 수고도 목표를 향한 할머니의 집념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 결과 필기시험은 950번 만에 합격하였습니다. 그리고 960번만에 실기까지 합격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60대에 접어든 바울은 로마 감옥에 수감 되어 있습니다. 지난 30여년을 복음의 열정에 사로잡혀 기독교가 세계 역사가 되도록 자리 매김 하는데 있어서 영웅적인 업적을 남겼습니다. 또한 서구 문화를 놓고 볼 때 문명의 물꼬를 바꾸어 놓았다고 할 만한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역사가 있는 이상 그 이름을 기억해야 될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 정도면 자기의 업적에 만족해서 “이만하면 됐다 이제 좀 천천히 가자 여유를 갖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아직 나는 목표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뒤돌아보지 않고 앞을 향해 힘을 다해 달려 가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기독교를 혹독하게 핍박했습니다. 예수 믿는 자들을 살려 두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메섹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그를 사로 잡으셨습니다. 그가 이렇게 예수님께 잡히자마자 그의 주인은 에수님이 되고 그는 예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이요. 메시야요. 삶의 모든 것 되시는 분으로 만난 것입니다.

 그토록 교회를 핍박한 자신를 무조건 용서해 주신 예수님. 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사도로 불러 주신 에수님. 이 은혜는 평생 갚아도 갚을 수 없다고 생각한 그에게는 사랑의 빛진자 라는 거룩한 부담감이 생겼습니다.

 “이제부터 남은 삶을 이 j를 위해 살리라. 예수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 되는 이것이 내 인생의 목표요 내가 달려갈 푯대다“ 그는 그렇게 목표를 정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정한 목표인 십자가에 죽은 예수가 죄인의 구주라는 사실은 유대인에게는 거치는 돌이요 이방인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헐벗고 굶주리고 멸시와 천대 받는 일을 자청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예수의 만남은 그 인생의 반전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름의 인생 목표를 가지고 살아 갑니다. 목표가 분명하고 확실할수록 그 삶은 의욕은 넘치고 어떤 장애물도 쉽게 뛰어 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무슨 목표를 가지고 있느냐 입니다. 그것이 내 인생을 걸 만한 목표인가 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목표를 가지고 사는 사람을 일컬어 어떤 사람은 딸꾹질 하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인생의 목표는 종말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마지막 인생을 결산할 때 후회하지 아니하는 목표라야 진짜 목표입니다.

 종말에 하나님앞에서 어떤 존재가 되느냐가 우리의 인생을 바로 살았느냐 못했느냐를 평가하는 기준이 됩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걸어도 후회하지 아니할 그런 목표를 붙들어야 합니다. 바울이 바로 그 목표를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 갖힌 몸이 되어 언제 풀려 나올 지도 모릅니다. 더구나 빌립보서를 보면 그는 이미 불길한 죽음을 예감하고 있습니다. 나이도 늙었고 몸도 남에게 말할 수 없는 통증을 달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육상선수가 달려 가듯이 신앙 생활을 하겠다고 합니다. 아직도 이르지 못한 그 목표에 끝까지 달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옥에서도 눈물과 기도로 세웠던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시간만 나면 차가운 돌 바닥에 엎드려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찾아 오는 사람들에게 전도하고 유대인들을 앉혀 놓고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감옥에서도 쉴틈이 달려 가는 인생을 산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데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 두 가지를 포기했습니다.

첫째 현재에 만족하는 안주의식입니다.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50이 넘어가면 안주의식의 조짐이 보입니다.

그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를 본받으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아무나 하는 것 아닙니다.그럼에도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에 안주하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안주하는 것은 현상유지가 아니라 퇴보입니다.

둘째.지나간 것을 돌아보는 것을 포기햇습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그는 사실 과거 30여 동안 전 세계를 하나님의 나라로 바꾸어 놓을 만큼 놀라운 선교의 업적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다 잊어 버리고 앞을 향해 달려 가기를 원했습니다. 사람이 과거에 메이면 앞으로 나가는데 저항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끝까지 푯대를 향해 짐념의 삶을 사는 바울에게 주님은 기쁨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 기쁨은 감옥이라는 환경도 나이도 병도 다가오는 죽음도 초월하는 하늘로부터 오는 기쁨이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를 기쁨의 책이라고 합니다.

 960번 이상 넘어지고 쓰러진다 할지라도 결코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어떤 형편에 있다 할지라도 에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바라보면 결국에는 승리하도록 구원의 길을 활짝 열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지 아십니다. 그리고 집념에 한계가 있음도 일찍부터 아시고 구원의 길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사단의 집념이 얼마나 강한 지도 아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승리로 이끄시려는 하나님의 집념은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허물 많은 우리를 위해 아들까지 내어주시고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집념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목표로 달려나가는 진념의 삶이 될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