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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사랑의 심포니 고전13:13

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2020-08-27 15:56
조회
426
사랑의 합주곡에서 필요한 악기는 세 가지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이 중 한 가지만 빼도 불협화음이 일어납니다. 믿음의 연주, 소망의 연주, 사랑의 연주를 들어야 합니다. 그중에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과 하나님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에게서 사랑이 나옵니다. 이 사랑은 성부 하나님과 관련이 있습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믿음이 나옵니다.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나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죽은 자가 살아나는 믿음이 나옵니다.

소망에 관한 성경 구절을 찾아보면 소망은 모두 성령님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 소망, 사랑이 서로 도와주고 격려하고 영향력을 주고 있습니다.

블가능을 가능케 하는 믿음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 없는 것을 있게 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립니다.

믿음의 세계는 이성, 합리성의 세계와 다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의 기준은 합리성, 상식, 이성입니다. 세상은 합리성을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그러나 합리성, 이성에는 기적이 없습니다. 합리성의 세계에 기적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합리성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성, 합리성의 세계에 살지만 실제로 우리가 부딪히는 것은 이성과 합리성을 초월한 일들입니다. 내 아들이, 사랑하는 아내가 죽을병에 걸렸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성으로 판단해봐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평상시에 이성과 합리성으로 사는 것 같지만 실제로 인생의 위기, 폭풍, 죽음, 절망에 부딪히면 이성과 합리성을 찾지 않습니다. 그 순간 이성과 합리성은 잊어버리고 믿음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사람들이 불안하고 당황해서 잠들지 못합니다. 이 때 합리성은 약을 먹으라고 합니다. 약을 먹으면 어느 정도는 해결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언젠가 죽는데 죽음 이후의 문제에 대해 누가 답할 수 있겠습니까? 이성으로 살았던 사람은 이성을 붙잡고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이성이 아닌 믿음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붙들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바라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세계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세계와 합리성의 두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합리성의 세계는 불안합니다. 거부하고 무시하고 부정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세계는 모든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기뻐합니다.

이성과 합리성은 하나님을 거부합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느냐? 어떻게 예수님이 물 위를 걸을 수 있느냐? 어떻게 죽은 자가 살아날 수 있느냐?’며 말씀을 거부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안에 믿음이 생기면 하나님에 대해 눈을 뜹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면 그렇게 어렵고 힘들어도 마음이 평안합니다. 하나님이 믿어집니다. 내 마음의 문이 열리는 것을 경험합니다. 일 년에 한두 번 교회에 오다가 어느 날부터 자꾸만 오게 됩니다. 믿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내가 하나님을 믿어서 믿음이 생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셨기 때문에 믿어지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자꾸만 하나님에 대해 좋은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 그것이 믿어집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것을 믿게 됩니다. 2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을 믿으면 내가 구원받는다는 것을 현대인이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다가 어느 날 하나님에 대해 긍정적이 되고,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 사랑해요“라고 말하고, 일이 잘 되지 않더라도 감사하게 됩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이 믿음의 세계는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고, 잡히지도 않고, 동의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면 믿음의 세계가 열리기 시작합니다.

절망을 절망케 하는 소망

희망은 미래를 여는 문이요 절망을 절망시키는 능력입니다. 사람들은 희망을 꿈, 이상이라고도 합니다. 성경적으로는 두 가지 단어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비밀이요, 다른 하나는 약속입니다.

비밀이 있습니다. 아직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비밀입니다. 그래서 미래적 의미가 있습니다. 비밀의 내용이 희망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 비밀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압니다. 그러나 다 안 것이 아닙니다. 영원히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영광의 소망입니다.

소망은 안전하고 튼튼하게 묶어 놓은 영혼의 닻 같아서 희망에 믿음을 걸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복된 소망을 기다리는 자들입니다.

성경을 보면 믿음, 소망, 사랑이 함께 나오는 말씀이 많습니다. 희망은 인생의 등대와 같습니다. 우리의 인생, 직업, 가정에서 어려움이 생겨도 마지막까지 희망을 붙들고 있으면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희망과 성경적으로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 약속입니다. 구원, 회복, 치유, 평안, 천국 등 성경에 수 없이 많이 약속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 찬란한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멀리서 보았습니다. 구약의 모든 사람들은 그 약속을 멀리서 보고 죽었습니다.

예수님도 이 비밀, 약속을 남겨두시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약속을 아는 사람들은 이 말을 듣기만 해도 가슴이 뜁니다. 세상을 이길 능력이 생깁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사랑받는 인간

성경에 보면 사랑의 정의를 명확하게 하고 있습니다. 남녀 간의 사랑,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친구 간의 사랑으로 말하지 않고 “하나님은 사랑(아가페)이시다“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헌신적이고 희생적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고 신실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랑 안에 들어오는 사람은 실망하지도 않고 상처 받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상처를 받는 것은 모두 인간의 사랑 때문입니다.

인간의 사랑 표현은 감정적입니다. 그래서 변화가 많습니다. 반면 하나님의 사랑은 의지적입니다. 하나님은 죄 많은 인간을 사랑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못해도 사랑하십니다. 부부 간의 사랑도 감정이 아니라 의지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 존재하시고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존재합니다.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은 인간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밥을 굶을지언정 사랑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방향을 바꾸면 우리의 영혼에 샘물이 흘러넘치는 것 같은 감동과 치유와 회복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것을 용납하고, 용서하고, 실수와 허물까지 받아들이고, 죄까지 용납하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예수님의 삶의 기록이요. 언어의 기록입니다.

모든 성도는 악보 같은 존재입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친절하며,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않으며,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내지 않으며, 원한을 품지 않으며,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고, 사랑은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인데 이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고전 13:13) 여기서 “언제까지나 남아 있다”는 말은 한 가지도 빠지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주고 격려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심포니를 연주하기 위해서는 한 사람도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중요한 사람입니다.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굉장히 중요한 사람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이 빠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믿음 위에 사랑을 세우고 소망 위에 사랑을 세우며 사랑 위에 사랑을 세우는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