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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비움과 체움 눅3:7-14

작성자
이 주신
작성일
2024-05-15 18:16
조회
84
중국 격언에 타산지석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상대의 실수를 나의 거울로 삼으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쉬지 않고 뉴스에 오르내리는 각종 비리와 사건들이 직업 윤리적으로 문제가 많은 그 일들을 통해서 교훈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2000년 전 유대 땅에 한 선지자가 나타나 도덕적으로 건강치 못한 사람들을 향해 회개하라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외침에 많은 무리가 마음의 찔림을 받고 그에게로 나아갔습니다. 그의 거침없는 폭언에도 그들은 그에게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물었습니다. 그때 선지자는 그들에게 이렇게 권면해 주었습니다.

첫째 나누어 주라,  “옷 두 벌이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줄 것이요 먹을 것이 없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옷 두 벌은 많은 옷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선지자는 두 벌이 있는 자는 나누어주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누누이 강조한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라는 의미입니다. 자기의 배만 채우지 말고 이웃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과 관련된 십계명의 요약도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명령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 것을 나누어주는 데 있습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내 손에서 다른 사람에게로 건너가는 것 쉽지 않은 일입니다. 깊은 애정과 사랑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감리교를 창설한 요한 웨슬리는 평생토록 철저한 절제 생활을 하면서 구제 활동에 모범을 보인 사람입니다. 그의 설교 중에 돈의 사용에 대한 몇 가지 원리를 설교한 내용이 있습니다.

원리 열심히 벌라 웨슬리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재능을 활용하여 건강하게 열심히 경제 활동을 하여 돈을 많이 벌어야 함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남에게 손해를 끼치며 돈을 버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였습니다. 돈은 수고의 대가이지 그 이상은 돈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할 수 있는 데로 저축하라 웨슬리는 육체의 욕망을 위하여 지나친 지출도 낭비라고 했습니다. 의식주에 과도한 지출도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미래를 슬기롭게 대비하는 것은 바로 저축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 했습니다.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주라고 그는 이 말을 가장 강조하면서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바로 바이 원리를 위하여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여 벌고 저축한 돈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바르게 사용되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경제적 재분배가 중요성) 만약에 할 수 있는 데로 열심히 나누어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마치 돈을 바다에 던지거나 땅에 파묻어 버리는 꼴이 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둘째 더 받지 말라, 인류의 비극은 바로 이 단어 때문에 시작되었습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라고 하는 이 욕심을 채우면 만족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돌아오는 것은 수치심과 죄책감뿐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욕심을 버리지 못하다가 인생 망친 사람들이 나옵니다. 아간은 외투 한 벌 은 금을 탐내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 비라 부부도 욕심 때문에 한 날에 죽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들의 이름은 모든 성도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욕심부리다가 망한 사람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아담 안에 있는 인간은 세상의 헛된 가치 추구와 그것을 즐기려는 욕망이 있습니다. 사단은 그러한 욕망이 일어나도록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유혹합니다. 만약 이러한 욕심이 말씀과 믿음으로 통제되지 않을 때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행동(죄)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회개치 않고 욕심에 이끌려 끝까지 죄악된 생활을 계속한다면 이 땅에서도 마지막 날에도 영원한 사망의 심판을 받게 되고 말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만족하라, 있는 없는 것으로 불평하지 말고 있는 것으로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자족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족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한 길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주어진 삶에 대해 만족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말년에 배운 것이 바로 스스로 자족하는 만족하는 삶이었습니다. 부유할 때나 가난할 때나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신의 처지에 대해 만족할 줄 아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처럼 바울이 온갖 핍박 속에서도 자족의 비결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지금까지 인생의 전부로 움켜잡고 있던 명예나 권세. 그리고 건강이나 재물의 욕심을 비우고 그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가 주는 채움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에서 만족함을 얻는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를 채움으로만 가능합니다.

이 땅의 돈이나 명예를 다 움켜쥐어도 만족이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바로, 이 세상보다 더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보다 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만이 만족이 있습니다. 또한 만족의 비결은 비우므로 가능합니다. 나의 모든 욕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가진 모든 소유권의 주권을 하나님 것으로 인정하고 양도할 때 만족함이 있습니다.

내려놓고 비우는 일은 무력한 자의 어쩔 수 없는 삶의 발자취가 아닙니다. 오히려 능력으로 무장된 자만이 할 수 있는 강력한 하나님의 무기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자기를 죽기까지 낮추시므로 하나님이 그를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모든 무릎이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셨습니다. 내려놓음은 결코 손실이 아닙니다. 내려놓을수록 채워지는 역설의 진리는 우리를 부유하게 만드는 풍요의 끈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 면에서 애굽과 가나안의 도시와 같은 곳입니다. 그래서 직장 속에서 무엇인가 다르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할 것입니다. 다른 기준과 다른 생활 방식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세례요한이 제시하는 그리스도인의 실천 사항입니다.

물론 이것이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매일 매일 그렇게 살려고 기도하고 노력할 때 점점 그렇게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누어주고 더 받지 말며 만족하는 모습의 삶을 살아가십니다.

저는 여러분이 모든 사람으로부터 그는 건강한 그리스도인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