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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언어는 변화의 힘 갈1:11-17

작성자
이 주신
작성일
2022-05-14 14:17
조회
200
미국의 적극적 사고 훈련가인 지그 지글러 박사가 하루는 거리를 걷다가 연필을 들고 구걸하는 사람 옆을 지나치게 되었습니다. 그도 어떤 사람들처럼 돈만 달랑 주고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그가 가던 길을 돌아오더니 “여보시오 아까 드린 1불 대가로 연필 주세요” 그러자 걸인은 연필을 주었습니다. 연필을 받아든 박사는 그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도 이제 나와 같은 사업가요 더 거지가 아니요”

그는 이 한마디에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그래 이제부터 나는 돈 1불을 받고 연필을 주는 거지가 아니라 사업가다” 그의 자화상이 바꾸어졌습니다.

그는 그날 집으로 돌아가면서 자기 자신에게 계속 말했습니다. ‘그래 나는 이제부터 사업가다. 거지가 아니라 연필 파는 사업가다“ 지글러 박사의 말 한마디가 그 속에 변화를 일으켜서 나중에 큰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박사를 찾아갔습니다. “박사님 박사님의 말 한마디가 나를 이렇게 변화시켰습니다. 사람들은 돈만 주고 연필은 안 받아 가기 때문에 나는 늘 거지 상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박사님이 당신도 나와 똑같은 사업가요라고 하신 그 한 마디가 내 인생을 이렇게 바꾸어 놓았다”

교육 심리학의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타인의 기대나 관심으로 능률이 오르고 결과가 좋아지는 현상, 이제부터 당신의 직업도 나와 같은 사업가요 이런 기대하고 말을 하니까 그 걸인은 정말로 사업가가 된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말로 자성적 예언이라고 합니다.

“저놈은 싹이 노랗다.” 그렇게 말하면 그 아이는 결국 노란 인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너는 훌륭한 아이가 될 것이다. 너는 할 수 있다. 라고 말하면 결국 그 아이는 훌륭한 아이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매일 같이 자신에게 나는 좋은 사람이야 라고 말을 하면 반드시 좋은 사람이 되어갈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의 대화에서도 말의 힘은 작용합니다. 말해봐야 소용없어 꼭 그런 걸 말을 해야 하나 하지만 우리의 말이 상호작용할 때 놀라운 변화의 힘으로 나아갑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언어로 죄인 되었던 우리를 구원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이 땅이 전부인 줄 알고 살던 우리를 교회로 부르셨습니다. 왜 부르셨습니까? 하나님과 화해를 하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를 주시려고 부르셨습니다.

죄인의 생명은 하나님과 하나 됨입니다. 인류의 첫 사람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인류는 하나님과 분리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격리된 인간은 두려움. 고독. 슬픔. 죽음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타락한 피조세계에 가장 우선순위는 하나님과 화해입니다. 하나님과 화해는 우리의 가장 큰 목적입니다. 하나님과 화해가 이뤄질 때만이 사람과 화해가 이뤄지고 자연과도 이뤄집니다.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음만이 하나님과 화해의 유일한 통로입니다. 그렇지만 억지로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복음의 전파와 성령의 개입하심으로만이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구원 방식이 강압적이거나 무력이나 총칼에 있지 않고 이와 정반대로 고난과 십자가로 구원하시고, 겸손과 온유로 구원의 길을 진행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화해가 이뤄지면 저절로 맺어지는 또 다른 열매가 있습니다. 그것은 나 자신과 화해입니다. 자신과 화해는 곧 하나님께 굴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내 죄를 용서해주시고 내 삶을 인도해 주십시오.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할 수 있습니다”.

자신과 화해가 이루어지면 앞에서 내가 누구인지 거울을 보듯이 알게 됩니다. 그래서 시간과 건강과 돈의 한계가 있는 것을 깨닫고 겸손함으로 살게 됩니다.

사울은 지금 예수를 믿는 사람의 씨를 말리려고 다 매석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가는데 홀연히 빚이 그에게 비추었습니다. 그리고 주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주여 뉘시오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그 순간 그렇게 살기등등했던 사울이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예수님의 부르심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개선장군같이 다메섹으로 들어가려다가 예수님을 만남으로 완전히 낮아지고 낮아지게 되었습니다.

“나는 구원받아야 할 죄인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의 돌봄과 인도를 받아야 할 사랑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인생의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나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누구냐를 아는 사람이 최고의 인생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살면 인생의 소유권을 하나님께 양도합니다. 하나님을 의존하고 신뢰합니다. 그것이 피조물의 올바른 청지기 적 삶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내가 누구인지 아는 만큼 다른 사람을 이해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어떤 행동을 하든지 내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삽니다. 그것은 바로 섬김과 배려와 용서와 사랑의 삶입니다.

사울은 자신이 핍박하던 예수가 곧 이스라엘 백성이 섬기던 하나님과 같다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체험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전혀 새로운 삶으로 그 인생의 반전을 가져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온몸으로 전하는 긍정의 언어로 이웃으로 하여금 회심과 변화의 삶을 살도록 합시다.

저는 여러분이 오늘도 전하는 사랑의 언어를 통해서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