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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달란트 비유 마25:14절~30

작성자
이 주신
작성일
2022-04-15 14:44
조회
235
부익부 빈익빈은 자본주의 사회의 단점 중 하나입니다. 어떤 사람은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는데도 부유해집니다. 어떤 사람은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정의롭게 사는데도 가난하다면 분명 공의롭지 못한 사회입니다.

또 어떤 이데올로기에서는 부유하게 되기까지의 노력은 평가하지 않고 부유한 사람들을 무조건 가난하게 만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부유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경우가 있는데 이 또한 공의롭지 못한 사회입니다.

물론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서 많은 사람을 눈물짓게 한 유제품 회사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회사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한 기업을 보고 모든 기업이 다 그럴 것이라고 일반화할 수 없습니다. 얼마든지 건강한 회사가 더 많이 있습니다. 공의로운 사회는 심은 대로 거두는 사회요.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얻는 사회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셨을 당시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오해 중 하나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정치 경제적 유토피아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는 유토피아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유토피아는 헬라어 후토퍼스에서 유래되었는데 번역하면 그런 곳은 없다’는 뜻입니다.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하나님이 공의로움으로 다스리는 나라로서 심은 대로 뿌린 대로 거두는 나라요,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가난한 사람에게 주기 위해 가진 사람의 것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진실 되고 충성된 사람에게는 더 주고 거짓되고 게으른 사람에게는 있는 것마저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제시한 기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기준이 무엇입니까? “맡겨진 일에 충성을 다하라“입니다. 오늘 본문에 소개된 하나님의 나라는 마치 종들에게 재산을 맡기고 떠난 주인과 같습니다. 주인은 종들의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들의 능력에 따라 돈을 나눠 주었습니다.

나중에 결산할 때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장사를 해서 받은 달란트 보다 배나 되게 남겼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땅에 묻어 두었다가 주인이 돌아왔을 때 한 달란트 그대로 돌려주었습니다.

주인의 반응입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이 다섯 달란트를 두 달란트를 받은 종이 두 달란트를 더 남겼다고 하자 주인은 종들과 함께 기쁨을 나눴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종은 한 달란트를 땅에 묻었다가 그대로 돌려주자 그를 책망하고 있는 것 마저 빼앗아 더 남긴 자에게 주었습니다.

오늘날 달란트는 재능이나 특별한 기술을 가리킬 때 쓰이는 단어지만 그때는 보통 사람들은 쉽게 가질 수 없을 정도의 큰 액수였습니다.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한 데나리온인데 한 달란트는 6천 데나리온입니다. 날 수로 환산하면 18년 정도의 품삯이 한 달란트입니다. 그러니까 2달란트는 36년, 5달란트는 90년의 품삯에 해당 하는 것입니다.

에수님이 달란트로 하나님의 나라를 비유하신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인생의 가치를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중에 달란트를 받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고귀한 삶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에 대해 결산할 때가 올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오늘 말씀에 세 명의 종을 등장시켰지만 사실은 부유한자가 더욱 풍성하게 살아가는 사람과 있는 것마저 빼앗기는 사람의 대조입니다. 주인은 한 달란트를 땅에 숨겨두었다가 그대로 돌려주는 이 종을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평가했다 무엇 때문일까요?

24-25절입니다. “저는 주인님이 굳은 분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씨 뿌리지 않은 곳에서도 곡식을 모으시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저는 두려운 나머지 주인님의 돈을 땅에 감춰 두었습니다. 여기 주인님의 것이 있습니다.

종은 주인에 대해 오해하고 불신했습니다. 자신이 한 달란트를 땅속에 파묻은 이유를 주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악함은 도덕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 자신의 책임임에도 하나님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악이라고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따먹은 후에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아담은 하와에게 하와는 뱀에게 책임을 떠 넘겼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자신이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주인의 탓으로 돌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구절 어디에도 주인이 종들에게 변상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종들을 믿고 맡겼습니다. 그런데도 달란트를 땅에 묻어 버린 것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주인에 대한 오해와 불신은 두려움을 만들었습니다. 두려움은 무엇인가를 신뢰하지 못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가능성을 파묻어 버리고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과 같습니다. 두려움은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해서 큰 문제를 작게 보고 작은 문제를 크게 보게 만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12명 정탐을 보냈습니다. 다시 돌아 온 그들은 백성들 앞에서 보고를 합니다. 여호수아 갈렙은 긍정의 보고를 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그러나 10명은 “우리는 그들 앞에 메뚜기라고 말했습니다.

똑같이 똑같은 현장을 정탐했습니다. 그러니까 10명은 어떤 상황을 보았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가지고 상황을 보기 때문에 두려웠던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신은 두려움을 만듭니다. 이 두려움은 게으름을 만들어 아무것도 하지 않게 만들어 버립니다. 하나님은 인생을 허비하게 하는 게으름을 악하다고 하셨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종은 주인으로부터 있는 것 마저 빼앗기고 쫓겨남을 당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종은 더욱 풍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나님 나라의 부익부 사이클에 들어가게 되었을까요?

첫째 그들은 주인의 공평하심을 신뢰했습니다. 그리고 맡겨진 삶에 충실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단에 따라 우리를 구별하십니다. 차별과 구별은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신 그대로 소명에 따라 살아가는 인생이 되도록 인도하십니다.

둘째 그들은 작은 일에 충성했습니다. 주인은 많은 액수를 남긴 종을 더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평가 기준은 성취나 성과가 아니라 태도입니다. 많은 것을 성취한 성공도 좋지만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능력에 있어서는 적고 많음에 차이가 있을 수 잇겠지만 성실함에는 많고 적음에 차이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적게 받은 자는 적은대로 성실함을 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이 2차 독자인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교훈은 나의 형편과 처지에 맞게 주어진 능력을 성실히 이행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충성하므로 주인의 기쁨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