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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회복과 부흥을 위한 위한 기도 눅22:41-44

작성자
이 주신
작성일
2023-07-15 07:18
조회
465
메마른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는 것은 추운 겨울 언 땅을 파는 것처럼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성도들은 언 땅을 파기 몇 시간 전부터 모닥불을 피워 땅을 녹이는 농부처럼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음으로써 얻게 된 따뜻한 은혜의 온기로 마음을 녹인 후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하늘 영광 가운데서 천사들의 나팔소리와 찬양 소리로 영광을 받으셔야 했던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셨습니다. 추우면 고통스럽고 죽으면 바람결에 날려갈 지푸라기 같은 육체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고 자기가 창조하셨던 들풀과 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거룩한 영광의 본체이신 그분이 육체를 입으신 것은 오직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인간을 대속하시기 위해 영원한 제물로 죽으시기 위함이었고 그렇게 죽으시기 위해서는 하나님이신 그분이 죽음의 속성을 가진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죄인 된 우리를 구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그분을 세상은 죽일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나셨습니다. 낮고 천한 목수로 사셨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하여 죄 없으신 그분이 세례를 받으러 나갔을 때 하늘에서 음성이 있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그분을 영접치 아니하였습니다. 오히려 이 땅에 등장하셨을 때에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40일 동안의 굶주림과 악한 마귀의 시험이었습니다.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세상은 그분을 영접하지 아니하고 거절하고 미워했습니다. 그들이 십자가의 예수를 죽일 때에 그들은 자기의 생명을 죽인 것입니다.

세상은 그를 향하여 돌은 던졌으며 침을 뱉었습니다. 채찍으로 그를 때리고 가시관을 씌웠습니다. 그 몸에 걸쳐진 옷 한 벌마저도 군병들에게 내어준 바 되었고 이제 벌거벗은 몸으로 오직 하나 남은 자신의 육체마저 깨뜨려 십자가에 매달리셨습니다.

이렇게 완전히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과 거룩한 하나님과의 사이에 영원한 제물로 자신을 드리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주께서 우리를 구속하신 십자가를 잃어버리고 세상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육신을 입고 오신 그분이 이 땅에 계실 때에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생애는 눈물로 살다간 기도의 생애였습니다. 오늘 성경은 그분의 기도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주님은 죄가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죄인들처럼 세례를 받으셨듯이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섬기시는 모습을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면서도 아버지께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며 일평생을 사셨습니다. 수많은 능력과 그 순결함에도 불구하고 일평생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 앞에 눈물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늘 기도하는 것이었지만 히브리서 기자의 시각은 철저하게 십자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기도를 떠올릴 때에도 주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대제사장의 기도였습니다. 남겨둔 사람들과 제자들을 위한 기도였고 이 땅에서 마땅히 돌려져야 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이 기도가 바로 주께서 잡히시던 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홀로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게 만들었던 그 기도의 제목이었습니다.

죄 없으신 주님께서 이처럼 통곡하시며 넘쳐나는 눈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셔야 했던 것은 우리를 위한 탄원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이 그토록 통곡을 하지 않고는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 기도의 제목들을 회복을 하여야할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도 그분이 우셨던 그 기도의 제목으로 울게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 각자의 기도의 골방을 적시게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그 기도를 듣고 계신 분은 죽음에서 그분을 구원하실 전능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다가오는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고 심한 통곡과 몸부림으로 기도할 때에 그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단지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를 죽음에서 끌어 올려 주실 만군의 하나님이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부활을 바라보는 기도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다가오는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드리는 겟세마네의 기도가 끝이 나고 예수님은 그 십자가를 지시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부활의 능력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였습니다. 사망의 칼날이 자기를 향하여 오고 있고 자기의 피를 요구하는 십자가가 다가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에서 능히 자신을 구원하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고 힘차게 일어섰던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 아버지시여 라고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부를 때에 나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이 엄습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신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은 기도의 응답을 받으셨습니다. 오늘 성경은 예수께서 그 기도를 하실 때에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 주셨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이처럼 말할 수 없는 통곡과 눈물의 기도를 올렸기에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말하지 않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간절한 기도의 모범이 되시기는 하지만 간절히 기도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반드시 들어주실 것이라는 생각은 오해라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계명을 온전히 지키고 삶의 동기가 주를 경외하는 것에 모두 맞춰진 자의 기도를 하나님은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가슴을 칠 만큼 간절한 기도라 할지라도 그의 삶이 주를 경외하고 사랑하고 주님을 위해서 살려고 몸부림치는 삶이 아니라면 그가 외치는 기도 소리는 주님의 보좌 앞에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위대한 기도의 사람들의 삶은 골방에만 묻혀있는 삶이 아니라 주를 위하여 생명을 걸고 나아가 싸운 사람들이었습니다. 복음을 들고 외쳤으며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주께 영광 돌리기 위해 피흘려 수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짧아도 힘과 능력이 있었습니다. 여호수아 기도가 그랬고 다니엘의 기도가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단순히 기도의 사람이 아니라 주를 위해서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기도를 주님께서 응답을 해주셨던 것입니다.

눈을 들어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통곡과 눈물로 기도를 하실 때에 응답해주셨던 하나님이 지금도 이 교회와 우리의 삶의 주인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이 통곡하며 기도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해, 교회와 가정을 위해, 직장과 이 사회를 위해 기도합시다. 주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우리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셨던 것처럼 각 사람 마음의 부흥을 주시기를 기도하는 눈물의 잔들을 채워 나갑시다.

저는 여러분이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셨던 에수님의 기도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며, 또한 그 마음으로 기도 생활을 통해서 회복과 부흥을 이룰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