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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자유와 종노릇 갈5:13-15

작성자
이 주신
작성일
2023-10-15 13:32
조회
326
사람이 느끼는 정신적인 고통 중에 자유가 박탈당할 때 느끼는 고통이 있습니다. 다른 조건이나 환경이 아무리 좋아도 자유가 통제되면 그 자체로서 고통을 느낍니다. 이러한 대표적인 장소가 감옥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또 하나의 감옥이 있습니다. 바로 마음의 감옥입니다. 아무리 보이는 그 감옥에서 나와서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보이지 않는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는 참 자유인이 아닙니다. 여전히 울타리 없는 감옥 아닌 감옥 속에 갇혀 사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22절의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이 말씀이 적용될 때만이 오랜 세월 동안 자기를 가두고 있던 마음의 감옥으로부터 풀려날 것입니다. 그리고 참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본문이 기록될 당시 기독교인들의 자유를 묶어 놓는 것 중의 하나는 수많은 규제와 법칙들이 포함된 율법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해서 철저하게 지키도록 정해진 규칙을 만들어서 그 틀 속에 가두었습니다.

나면서부터 치러야 했던 할례의식 어떤 날을 중요한 날로 정해서 지키는 일, 어떤 음식을 먹어도 되는지 아닌지 구분하는 일, 안식일에 머리 손질. 상거래 중지. 취미활동. 외출 금지 등 모두 613개 조항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 만들어 놓은 이러한 규칙의 지배를 받으며 종처럼 살았습니다. 이 율법의 옭아맴이 얼마나 심각했던지 바울은 이러한 자발적 규제를 가리켜 종의 멍에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종의 멍에란 주인이 종의 등에다 나무 가래를 설치해서 그 위에 무거운 짐을 싫고 주인이 원하는 대로 끌고 다닌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같은 율법의 부당한 통제에서 자유를 선포하셨습니다. 5장 1절 “그리스께서 우리로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여기서 말하는 자유란 실제 자유를 말합니다. 평생 그들의 두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돌덩어리 같은 짐을 예수님이 내려놓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유가 선포되는지 보니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그것은 주어진 자유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하는 자유를 누리는 문제입니다.

오랫동안 억압당했던 사람에게 자유가 주어지면 극단적인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납니다. 자유를 마음대로 사용해서 악을 행하거나 아니면 자유를 포기하고 길들고 익숙해진 생활을 고집하는 경우입니다. 초대 교회 안에 율법으로부터 자유가 선포되자 이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첫 번째, 현상은 여전히 율법을 중시하는 유대인 기독교인입니다.

여전히 할례받을 것을 주장했고 모든 율법의 지킬 것을 고집하였습니다. 교회 안에서까지 율법의 틀 속에 살도록 강요하였습니다.

율법의 기능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몽학선생입니다. 사람이 율법을 지키려고 하면 할수록 절망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완성하셨으므로 율법의 기능은 종료되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 현상은 자유가 마치 모든 것을 다 해도 되는 것처럼 자기 마음이 가는 대로 살아도 된다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마치 더 이상 도덕은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도덕 폐기론 자들과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13절 말씀에서 “형제들이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 자유로 육체적 방종의 기회로 삼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권한에는 책임이 따르듯이 자유에도 책임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오직 사랑으로 종노릇하라 이 말은 다시 율법의 굴레에 종노릇 하라는 말이 아니라 사랑으로 섬기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주인의 신분이시지만 사랑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고난의 잔을 마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바울은 이 예수님을 본받아 종노릇 하라 것입니다.

14절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이미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급에서 이끌어 내시는 그 순간부터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시는 순간에도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다 라고 기도하심으로써 실제로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사랑으로 서로 섬기지 않을 것에 대하여 15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의 야수성을 꼬집어서 사람을 야수에 비유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으로 섬기지 않는 상태로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고 사는 것은 위장된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입니다.

우리를 속박하는 증오와 미움 욕망과 탐욕의 감옥으로부터 자유는 오직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쾌락과 욕망으로부터 자유는 오히려 육체와 영혼을 파괴하는 감옥이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자유를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미움의 칼을 내려놓고 진정한 자유와 사랑의 섬김의 능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시는 그것은 예수님이 주신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서로서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자유로운 삶을 원한다면, 진정으로 자유로워하고 싶다면 그렇다면 옆 사람을 진실한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과 정성으로 섬기는 그만큼 참된 자유가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가지고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는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